깊은 눈을 가진 작가, 오채 <날마다 뽀끄땡스> 외


 오채<날마다 뽀끄땡스 / 문학과지성사>를 읽고 내가 단번에 반해버린 작가이다.

할머니랑 둘이 섬에서 사는 소녀 들레(성까지 부르면 민들레다. 작고 예쁘면서도 굳센 느낌이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진다. #.#)는 돌아가신 아빠 대신 뭍으로 돈 벌러 나간 엄마가 늘 그립다. 하지만 다부지고 자존심도 강한 성격에 그런 내색없이 당차게 살아간다. 서울에서 온 선생님들이 '섬 생활이 감옥같다'며 떠나버리는 게 서운하지만 이번에 오신 선생님은 좀 다른 것 같아 은근히 기대가 된다. 해군 대장인 아빠를 따라 섬에 오게 된 보라를 사이에 두고 단짝친구인 진우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내 삼총사가 되어 즐거운 생활을 한다. 그런데 뭍에 나간 엄마가 재혼을 하게 된 걸 알게 되어 크게 상처받는다. 마침내 들레는 할머니 몰래 배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데...
이 책은 스토리 흐름이 자연스럽고, 5학년 소녀의 심리묘사도 차분하고도 깊이있게 보여진다. 자존심 강하고 지는 것을 싫어해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는 들레의 성격묘사가 선명하고 매력적이다.
특히 섬마을이 배경이라 사투리나 많이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 단어가 종종 나오는데 그것이 바닷가에서 마음을 달래는 소녀의 모습과 어우러져 소설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할매, 하알매. 엄마가 멜로디언을 드디어 보냈어. 이것이 입으로 훅 불면서 건반을 누르면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이여. 신기허제?"
"우리 들레가 요놈 갖고 싶어서 그러고 즈그 엄마를 닥달했구마이. 어디 그 쪼깐한 멜로홍 한번 보자."
"아이, 멜로홍이 아니라 멜로디언이여."
"아따, 얼렁 상자나 풀어봐라. 직접 보고 들어보믄 쓸 것을."

마해송문학상을 탄 이 책을 읽고 나는 오채의 두번째 소설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나의, 블루보리 왕자 / 문학과지성사>를 읽었다.

4학년 소년 한솔이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소원이다.
아빠는 지방에 있어 집에 없고 엄마도 간호사로 일하느라 늘 바쁘다. 형제도 없는 외로운 집에서 친구같고 가족같은 강아지를 원하는 거다. 그런데 생일선물로 엄마가 사 준 것은, 로봇강아지다, 헐.
마침 동네 슈퍼아저씨가 시베리안 허스키를 사서 가게 앞 골목에 묶어두었다. 사실 교통사고로 죽은 슈퍼집 아들이 좋아했던 개가 시베리안 허스키였다. 아저씨는 대형슈퍼마켓의 등장으로 생활도 어려운데 아들 생각으로 비싼 개를 산 것이다.
이제 한솔이는 슈퍼집 개 '왕자'를 단짝친구 민규보다 친한 친구로, 우정으로, 사랑으로 아끼고 함께 한다. 하지만 웬수같은 민지가 왕자를 '블루베리'라고 부르며 차지하려 하는데...
이 책은 '뽀끄땡스'에 비해 배경이나 상황이 한결 일상적이다. 그래서 읽어가는 동안 '에효, 뽀끄땡스보다 좀 약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왕자 때문에 '사랑의 아픔'을 흠뻑 겪게 된 한솔이에게 슈퍼아저씨가 위로하는 부분을 읽으며 '아, 역시...!' 하며 숨을 멈췄다.
"너 지독하게 첫정을 줘 버렸구나. 원래 첫정이 무서운 법이지."
"첫정이요?"
"처음으로 사랑을 너무 많이 쏟았다는 뜻이야. ...... 살다보면 그런 일이 많아질 텐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는 때 말이다. 그것이 인생이더라. ...... 왕자가 너하고 나한테 잠깐이지만 행복을 줬잖니. 어쩌면 왕자는 우리 아들놈이 보낸 선물이었는지 모르고."
...... 나는 그네에 앉았다. 그네가 앞으로 나갈 땐 왕자가 나에게 달려왔다가 그네가 뒤로 가면 왕자는 다시 멀리 달아나 버렸다. 나는 왕자를 붙잡으려고 더 힘껏 그네를 굴렸다. 엉덩이에 힘이 들어갈수록 왕자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다가 그만큼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네를 멈추고 땅바닥을 봤다. 왕자는 바닥에서도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내 머리카락이 날렸다. 왕자의 멋진 털이 날렸던 것처럼 내 머리카락이 바람따라 날렸다. ...... 잠바에 손을 넣자 '삐비빅' 소리가 났다. 왕자와 함께 가지고 놀던 공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공을 눌러 보았다. '삐비빅' 소리가 꼭 '컹 컹' 짖는 허스키한 왕자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왕자의 목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싶어서 한참동안 공을 눌러 보았다.

그러니까 '뽀끄땡스'의 들레는 엄마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섬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민들레처럼 굳세게 성장하고,
'블루보리 왕자'에서는(이름과 왕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책을 읽으면 놀라운 반전이?! ㅋㅋ) 한솔이가 왕자를 사랑하고 아파하며 한 단계 성장한다. 대단한 상황설정이나 굴곡진 스토리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성장하는 진실된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그런 면에서 작가 오채는 인생을 바라보는 깊은 눈을 가진 것 같다.
노을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안마도에서 태어났다는 작가소개를 보니 '뽀끄땡스'의 배경이 작가의 어린시절 무대였던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밭을 넓혀주고 다듬어주는 자연 속에서 자라난 작가 오채가 아파트와 상가의 학원 사이만 오가는 오늘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좋은 책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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