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 둘쨋날도 지나고 런던 / 2011

사실 지금은 첫날이 아니라 둘쨋날이다.
(재서와 나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걱정도 하는 남편과 친구들을 위해 생생한 일기를 올리려는데, 쉽지만은 않군여. ^^;)

어제, 첫날의 마무리는 런치타임 프리 콘서트였다.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 옆에 있어서 그 일부인 줄 알았던,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전혀 상관없는 교회라는 세인트 마가렛 쳐치에서 여름동안 월요일/목요일에 프리콘서트를 한다는 광고가 붙어 있기에 다리도 쉴 겸 보러 갔는데, 오, 세상에, 완전 대박!
나탈리 포트만을 닮은 여자의 바이올린 리싸이틀이었는데, 크지 않은 교회에서 무료로 하는 공연이 그렇게나 훌륭할 거라곤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재서와 나는 깜짝 놀랐다. 클래식 연주를 특히 좋아하는 재서는 크게 감동을 받아, 나오는 길에 나를 재촉해 1파운드 헌금으로 마음의 표현을 했다.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메트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나는 런던의 메트로에 대한 나쁜 소문을 하도 많이 알아놓고 가서 그런지, 좁고 구불구불한 메트로 역사(驛社)와 에어컨도 안 나오는 메트로에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런던의 버스와 메트로를 다 해결했다는 것이 뿌듯하기만 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첫날을 보내고 둘쨋날이 되었다.

오늘 중요한 일은 뮤지컬 <빌리엘리엇>과  연극 <War Horse> 예매하는 것.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까 했었는데, 여름 시즌에 인기있는 공연은 몇 달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터넷 예약분과 현장 판매분이 따로 있으니 괜히 더 비싼 값으로 예약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인터넷 예약을 하면 집으로 표를 보내주는 곳도 있었는데, 런던집의 주소를 알고는 있었지만 약간 불안한 마음도 들고, 특히 길눈이 어두운 나로서는 극장에 미리 가 표를 사면서 장소를 확인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런던에 오자마자 표를 사두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빌리>는 빅토리아 스테이션 근처에 극장이 있는데, 빅토리아 스테이션은 아마도 우리나라 서울역이나 강남터미널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노선이 빅토리아 스테이션에 걸쳐 있고, 기차역도 포함되어 있었다. 터미널 휴게실처럼 소박한 맛집 체인점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먹고 돌아서면 금방 배가 고파지는 재서를 위해 '콘웰 패스티'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거대한 고기 왕만두' 정도 되는 것을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오늘 피곤한 하루를 견딜 수 있었던 탁월한 선택이었다.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빌리 엘리엇>을 예매했다.
역시 현장에 가니 표가 많이 있어서, 인터넷으로는 전혀 턱도 없던 목요일 오후 2시 공연을 예매했다.
(저녁 7시 공연을 보고 밤늦게 집에 오려면 어쩐지 무서울 것 같아서 나는 꼭 목요일에만 있는 낮 공연을 보고 싶었다.)
쉽게 표를 사고 나니 마음이 기쁘고 여유가 생겨 빅토리아 스테이션 근처를 둘러보기로 하고,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으로 갔다.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과 이름이 비슷해서 무슨 연관이 있나 싶은, 그러나 그렇지 않고 영국 카톨릭 교회의 중심이 되는 성당이라 했다. 유럽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이 성지라도 되는 것 같았다.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거룩하고 성스러운 곳에 가니 마음이 경건해져서 이번 여행 동안 하나님께서 재서와 나를 이끌고 다녀주세요 기도를 드렸다.
건축가가 꿈인데다 평소 왼갖 책들을 다 읽어 아는 게 많은 재서는 성당의 구석구석을 가리키며 나에게 강의를 했고, 다 보고 나와서는, 안에서만 보지 말고 바깥도 한바퀴 둘러보자며 관광객은 가지도 않는 성당의 뒷골목까지 나를 끌고 다녔다.
재서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특별히 감동을 받은 듯했는데, 성당이 워낙 웅장하고 커서 전체를 다 찍기가 어려워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고 이쪽저쪽에서 노력하는 나에게 '이런 건물은 사진기로 찍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어떤 사진기로도 실제로 보는 것만한 감동을 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
길찾기의 달인인 재서가, 대성당에 왔으니 버킹엄궁을 보고 가면 코스가 적당하겠다 하여 그러기로 했다.
버킹엄궁은 크고 멋지긴 했지만 대단한 감동을 받지는 못했고, 오히려 그 맞은편의 퀸 빅토리아 기념비와 주변의 분수대가 더 멋졌다. 그런데 책에서 보니 4월에서 8월 10시 50분부터 12시 반까지 하는 위병대 퍼레이드가 장관이라고, 아침 일찍부터 기다려서 궁전 담에 붙어 있으라 했는데 해볼지 말지 생각중이다. (안 할 것 같다. ㅋㅋ)

사실 이때부터 나는 다리가 아프고 배낭을 메고 몸을 지탱하며 계속 걸으니 허리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빅토리아 스테이션으로 가서 전철을 갈아타가며 홀본 역으로 가서 <war horse/뉴 런던 씨어터>를 예매했다.
이 부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데,
빌리 엘리엇을 예매할 때와 달리 여기서는 내가 원하는 날짜에 표도 없고, 있으면 너무 비싼 좌석만 있고, 아니면 재서와 내가 따로 떨어져서 앉아야 하고,,, 이런 식이었다. 영어로 하는 말이 자꾸 길어지면 나는 점점 힘들어지는데, 독일로 떠나기 이틀 전 목요일 오후타임에 겨우 표가 있어서 사기로 했더니, 이번에도 역시 아까와 달리 물어보는 게 많아 퍼스트네임과 패밀리네임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던 내가 여권 복사본까지 보여주고, 런던핸폰 번호를 물어보는데 전화기를 들고만 다니던 내가 내 전화번호를 몰라 가방 속 수첩에 적어둔 걸 찾아서 불러주려니 8이 에잇인지 식스인지가 막 헷갈려서 쌩난리를 쳤다. (지금 생각하니, 8과 6이 비슷하게 생겨서 영어로 말하려니 그걸 헷갈린 것 같다. @.@;;)
그래도 끝까지 친절하게 웃으며 대해준 뉴런던씨어터 창구의 흑인아저씨에게 감사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쪼금 망설이다가 '엄마가 영어를 잘 못해서 챙피하지 않아?' 하고 물었더니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아니라고 해준 재서에게 고마웠다.

오는 길에 내일 아침에 먹을 것 등 무얼 조금 사려고 런던의 대중적인 백화점이라는 '셀프리지 백화점'에 갔는데, 이 정도가 대중적이면 영국에서 툭하면 들리는 '로열'이란 도대체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한 것인지, 4층짜리 백화점이(우리 식으로 하면 5층..) 어찌나 으리뻔쩍한지 열심히 둘러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사실 요즘이 영국의 여름 세일 기간이라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에너지 솟구치고 흥에 겨울 만한데, 나는 서울에서도 쇼핑은 놀이가 아니라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지라 북적거리는 런던의 쇼핑가가 부담스럽고, 특히나 이리저리 다니며 피곤하고 정신없을 재서를 데리고 한가하게 옷을 뒤적일 마음의 여유도 없는 중이다.
그래서인가 빨리 필요한 것만 사서 향수냄새 작렬하는 백화점을 나오고 싶었건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점점 피곤해지고, 겨우 백화점을 나오니 다섯시가 넘었는데 일찍도 퇴근하는 런더너들이 메트로에 꽉 차서 왼갖 냄새가 또 작렬하고, 그 와중에 뭐라뭐라 방송이 나오며 전철은 한참이나 멈춰서 있거나 아예 문을 열어두고 있고, 짜증이 나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도 여기서 나가 버스를 타고 가야할지 지도를 보며 궁리를 하는데 다시 아무 말도 없이 문이 닫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쌩 달려 겨우 스위스코티지역에 도착.

'워홀스' 예매할 때부터 집에 오기까지 너무 힘들었고, 사실 런던에 도착한지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무리하면 안 되고, 좀아까 bbc 뉴스를 보던 재서가 내일은 비가 온다 알려주기도 했고, 그리하여 내일은 별 일 안 하고 쉬기로 했다.
그냥 집에서 쉬면서, 전철 노선은 문제없으니 인터넷으로 버스 노선을 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고, 낮에 아무도 없을 때 한가하게 샤워도 하고 (주방과 욕실을 공동으로 쓰는 영국의 '플랏'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겠다. 흠.. -.-), 어쩌면 빨래도 하고, 어쩌면 방주인 s양이 알려준 한국식당에 가서 갈비탕이라도 먹고,,, 그래야겠다.

- 앞으로 정리하며 남겨둘 얘기 ; 플랏에 대해, 그리고 재서에 대해.(오, 나는 요 며칠새 재서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재서는 참 괜찮은 녀석이고, 적어도 나보다 훌륭한 인간이다. 지금 상황으론 내가 재서를 데리고 외국에 온 건지 재서가 나를 모시고 온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쫌 부끄럽지만 정말 다행이다. ㅠ.ㅠ)


덧글

  • Daniel 2011/07/06 07:58 # 삭제 답글

    오호~~훌륭하오. 매일 매일의 발전이네. 첫날 둘째날 옆에 날짜도 기재해 놓으면 좋을 듯...
    처음엔 모든게 신기하고 새로와서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러면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지기 마련.
    2-3일 보고 하루 쉬면서 정리하고 계획하는 것이 좋을 듯.
    암튼 하루 하루의 에피소드들이 글로 읽는 나도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나서 좋네. 화이링~~.
  • better 2011/07/06 18:39 #

    오기전에 내가 걱정했던 것들은 별거 아니게 해결되고, 생각도 못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러네.
    그래도 잘 적응하면서 해나갈게, 걱정하지마. ^^
  • 정여사 2011/07/06 18:30 # 삭제 답글

    울 딸 신랑감후보 1등은 여전히 대견...
    예비시어머님이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 되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도다. 핫핫!
  • better 2011/07/06 18:37 #

    그러게, 재서 없었으면 나는 아마 한국대사관 찾아가서 앉아있을 듯. ㅠ.ㅠ
  • 조표범 2011/07/13 01:53 # 답글

    친구를 만나 카페인을 다량 섭취하고 왔더니 도무지 자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서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베터님 여행기를 발견하고 이거닷! 하며 좋아하고 있어요^^ 꺄~ 일기를 쓰고 계셨군요! 좋아요 좋아요>.< 샅샅이 읽어버리겠습니다! 처음엔 뭐든 배로 힘들기 마련이지요. 낯설고, 어색하고, 확신이 안 서고.. 잘 적응 하실 거예요^^ 이미 잘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마지막 아드님에 대한 말씀이 인상적이예요. 여행의 동행자에게 의지하고, 더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이란 게 원래 너무나 비일상적이고 때로는 혹독하기까지 해서 보통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훌륭한 동행자가 함께 있는 여행이라니, 부럽고, 또 제가 다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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