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과 국수 루앙 프라방 / 2016

새벽에 사람들이 거리에 무릎꿇고 앉아서 스님들에게 음식 드리고, 스님들은 그걸 또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행사. 탁발. 
루앙프라방에서는 새벽마다 거리에서 탁발 의식을 행하는데 이게 대단한 볼거리라기에 새벽기도 가던 실력을 발휘해 컴컴한 골목으로 달려나갔다.
하루키가 쓴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에 보니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탁발에 직접 참여하면 뜻밖의 묘한 신비감을 느낄 수 있다던데, 나는 길건너에서 사진만 찍어서 그런가 엄청난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기독교신자라서 구경만 한 건 아니고, 뭐랄까, 나로서는 이것이 일종의 볼거리 정도로 느껴질 뿐인데 엄숙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참여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고 진정성없는 행동 같아서 그냥 구경만 했다. 
대신 내가 속으로 내내 고민하던 건 다른 거였다. 국수를 먹을까 말까 하는 것.
탁발 의식이 진행되는 '왓센' 과 '왓솝' (둘 다 루앙프라방의 유명한 사원이다. 루앙프라방 최고의 사원은 '왓 씨엥 통'.) 의 건너편에 유명한 카오소이 가게가 있는데,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대로 옮겨보자면 '간판도 없고 오전에만 잠시 영업하는 작은 가게지만 다들 물어물어 찾아오는 곳' 이란다. 탁발 행렬을 구경하다가 바로 그 유명한 카오소이 가게를 발견했다. 주인 부부가 야채를 다듬고 육수를 끓이며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특이한 향신료나 낯선 음식을 겁내는 사람이 아니다. 여행 왔으면 현지음식 먹어야지, 평소 집에서 먹던 무언가를 싸들고 여행하거나 한식집만 찾는 사람은 안타깝게 여긴다. 그런데 나의 문제는, 국수를 파는 가게의 생김새나 위생상태가 좀 두렵다는 것!
내가 다소 결벽증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그 가게는 제대로 된 주방이라거나 씽크대 같은 게 없는 노점에 가까운 가게였고, 가게 앞 인도에 조그마한 플라스틱 테이블 두 개와 우리나라 목욕탕 의자 같이 생긴 의자를 둘러놓은, 좋게 말하면 매우 정겹고 소탈해보이는,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게 생긴 그런 가게였다. 어쩌지.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최고로 유명하다는 이 국수를 '깔끔떠느라' 안 먹어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인 것 같아서, 첫타자로 먹으면 뭔가 조금이라도 청결하지 않을까 싶어 탁발이 끝나기도 전에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국수를 먹었다. 
다진 고기와 특유의 향이 나는 야채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된장 비슷한 소스를 풀어서 먹는 카오소이는 진짜로 장인의 손맛이 느껴지긴 했다. 그렇지만 젓가락이, 젓가락이... 나무로 된 젓가락이 너무나 닳고 닳은 게 좀 마음에 안 들어서 최대한 젓가락을 빨지 않으려고 주의하며 먹느라 국수맛에 온전히 집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하나의 국수가 더 남았는데 그건 바로 카오삐약.
이 집도 '오직 카오삐약만으로 승부하는 국숫집' 이라는 설명이 붙은, 위의 카오소이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러니까 대충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다. 카오삐약은 일단 면발이 카오소이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고, 오동통한 게 약간 우동면발 같다, 소스도 전혀 다르고 육수도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베트남국숫집이 많긴 하지만 카오소이나 카오삐약 같은 건 보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나는 평생 '내가 그때 카오삐약을 먹어봤어야 했는데.. 그 국수는 어떤 맛이었을까...' 하며 후회할 거다. 하지만 가게가 너무 허름하면, 아니 허름한 게 아니라 위생상태가 좀 의심스러우면 국수를 먹는 데에 집중을 할 수 없는데 이를 어쩌란 말이냐. 
고민만 하다가 끝내 카오삐약을 먹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던 나는 드디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날, 호텔 체크아웃까지 하고 나와 마지막으로 루앙프라방의 여행자거리를 돌아보다가 '고급 라오스 음식점'이랄까 하는 곳에서 카오삐약을 발견하고 당장 달려들어갔다. 아마도 내가 먹은 카오삐약은 길거리 국숫집 장인이 만들어준 진정한 카오삐약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만족했다.

이 글이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엄청 재수없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어떤 방향으로 순화시켜서(?) 쓰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마음으로 이런 식의 여행을 했다는 걸 솔직하게 썼다. 내가 재수없게 깔끔떠느라 놓친 것들도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고 싶다고나 할까.
혼자 여행을 하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군..' 하는 걸 새삼 알게 되는 게 많다. 
나는 소심하지만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용감하기도 하고, 남들이 하는 걸 무조건 따라하는 건 싫어하는 식의 웃기는 반항심이(?) 있고, 배고픈 건 참아도 좀 더러워보이는 건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더러우냐 깨끗하냐 하는 게 여행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래서 나는 루앙프라방이 '전체적으로'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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